환자 K라고 하겠다. K님은 40대 초반의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였고,
수술 전 선행항암을 마친 후 유방 전절제술을 위해 병동 1인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처음 그 환자를 본 것은 아침 인수인계 시간이었다. 인계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약물 하나하나에 민감하신 분”, “약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
민감함도,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지만, 환자의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은 간호의 시작이기도 하고,
특히 저연차 간호사의 경우 예상 밖 질문에 즉각 답하지 못하면 의료진 전체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하며 병실 문을 두드리게 된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환자분~” 하고 인사를 건넸다.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표정과 분위기에서 특유의 예민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K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 예민함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더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먼저 물으며
환자의 호기심과 질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늘 밝은 목소리로 응대하려 노력했다.
이것은 내가 더 잘난 간호사여서 라기 보다는 그때 당시 내가 환자에게 그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K님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되도록 하느님이 허락해주신 좋은 타이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술 후 K님은 퇴원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그분은 이미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되어 있었다.
당시 K님은 봉와직염 (Cellulitis)으로 인해 지속적인 항생제 치료가 필요했지만, 투약을 강하게 거부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항생제 치료의 부작용이 너무 심해 현재 이 치료를 시행 할 몸상태가 아니며
CRP 수치가 전보다 많이 떨어져 열도 나지 않고 또 가까운 시일내 외래를 방문하여 경구 항생제를 처방 받겠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종종 그런 환자를 만난다.
의료진은 당연히 치료 시행하려고 하지만, 환자는 “꼭 필요한 약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덜고 싶은” 경우가 있다.
하필 그날은 주말 또는 연휴, 담당 주치의가 부재한 상황 당직의가 단독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나는 환자의 단단한 의지를 있는 그대로 의사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 복도에서 우는 K님 곁에 다가가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시는 거 알고 있어요. 항생제 치료 정말 쉽지 않아요."
"환자분의 의견을 최대한 정확히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의사 선생님의 판단도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K님은 퇴원을 원했지만, 의사는 “항생제는 환자 요청으로 중단 가능하나, 퇴원 여부는 주치의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K님은 그 결정에 동의했다.
며칠 뒤, 칭찬카드가 도착했다. 우리 병원은 선물이나 음료를 일절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카드가 환자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유일한 표현이었다.
K님은 자신의 불안과 예민함을 ‘유난’으로 치부하지 않고 경청해주고 공감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적어 보내주셨다.
나는 그 마음이 참 소중했다. 그 후 K님은 의료진에게 더 이상 예민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치료 순응도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무엇보다 환자가 불안에서 조금 벗어나 의료진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시간이 흘러, 내가 부서를 떠난 뒤 응급실 앞에서 우연히 K님을 다시 만났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인사했고, 그 환자분과 보호자분은 내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K님은 결국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환자 K님. 그때 보내주신 칭찬카드 덕분에 지금도 가끔 힘들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진짜 감사한 쪽은 저였어요. 그곳에서는 절대 아프지 마시고,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가끔 기억할게요.